요시다 쇼인의 '정한론'
지금 급한 것은 군비를 갖추고, 군함도 준비하고 대포도 부족하지 않게 하여 곧장 에죠를 개척하여 제후를 봉하고, 그 틈을 타 캄차카 오호츠크를 빼앗고 유구(流救)를 타이르고 막부의 제후들 처럼 參勤케 하며 회동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또 조선을 독촉하여 옛날처럼 공납시키고 북은 만주의 땅을 취하고 남쪽은 대만 필리핀 섬들을 우리 손에 넣고 점차 진취의 세를 나타내어야 한다. 그 다음에 백성을 사랑하고 무사를 길러 변경을 굳게 지키면 나라를 잘 보지한다고 하겠다. 그렇지 않고 여러 외국의 경쟁 속에서 좌절하고 아무 것도 행하지 않으면 나라는 쇠망해 갈 것이다. -요시다 쇼인, 다나카 카게 역 - <요시다 쇼인>
요시다 쇼인은 아베의 존경하는 인물이자 이토히로부미등 근대 메이지 침략 지도자들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주장을 정리하자면 '尊皇討幕', 즉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의 왕권회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구체적인 실천론으로서 등장하는 것이 '정한론'이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이론은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고, 어떻게 필연적으로 정한론이라는 결론에 이르러 조선합병이라는 비극을 자행할 실천척 구체성을 띄게 되었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막부 말기에 이르러 정권에 대한 민심은 6, 7년간 일본전역을 유행병과 기근이 휩쓴 까닭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이에 더해 미국의 페리제독의 내항과 이어지는 개국요청에 굳건하던 막부의 위용은 무너지고 암울한 민중들 사이에 요시다 쇼인이 있었다. 쇼인은 이미 1851년 탈번脫蕃행위로 처벌받은 적이 있었고, 부패한 막부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그러나 이는 1854년 3월 3일 막부가 미일화친조약을 맺자 그는 막부타도를 공식적으로 주장하며 그 명분으로 존황론에 기반을 둔 체제의 변화로 시대적 비젼을 제시했다.
나는 모름지기 명분을 명확히 하지 않는 것을 진실로 두려워한다. 막부가 최근 미국, 러시아 영국와 통신하였다. 삼가 그 약서를 읽어 보니 막부 스스로가 일본제국의 정부라고 칭함에 다름없다. 스스로 일본국의 대군주라 칭하는 것은 지극히 불가한 것이다. 정말로 그렇다면 외국인은 필경 막부를 황국의 지존으로 삼을 것이다. 이미 지존으로 삼는다면 詔勅制誥라 칭하지 않을 수 없다. 막부가 詔勅制誥를 칭함에 잘못이 없다면, 후일의 詞命은 반드시 國體를 잃어버려 왕명을 폐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를 어찌 진심으로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山口県教育会編。「黙務に与える書」(安政2年11月1日)
쇼인은 막부 타도에 동원할 수 있는 민중의 힘을 얻고 정통성과 명분을 위해 천황이라는 정치적 구심점을 만들어냈다. 그는 천황의 복권을 위해 진구황후와 도요토미히데요시를 통해 실현된 삼한정벌설을 이용했는데 이는 일본 민족주의 사관의 정수인 국학 연구와 그 결을 같이 한다. 삼한정벌설은 [일본서기]의 신화적인 내용으로부터 출발한다. 대략적인 내용은 야마토의 진구황후가 조공을 하지 않는 신라에 배를 보내 왕의 목을 쳤고 백제와 고구려의 두 나라 국왕도 일본에 스스로 머리를 조아려 기어 들어왔다는 내용인데, 물론 이는 신라의 기록과 중국에 또한 기록된 바 없는 내용이며, 일본 내의 기록에서도 일본서기와 고사기의 내용이 모순을 보이는 등, 신뢰도가 떨어지는 하나의 '전설'이라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진구황후의 전설이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공의 명분으로 작용한 것과 같이 요시다 쇼인의 구국 이데올로기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신민국가에서 국민국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조선민족이라는 집단을 타자화하고 일본인이라는 정체성과 제국주의사상을 내면화해가는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 존황론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 일본국가의 건설에 있어서 '정한설'의 등장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아베의 혐한 프레임
한일 관계의 비극은 정한론이 19세기 이후 근대 한일관계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이며, 이런 허구적인 담론으로서 제국주의사관을 정당화한 왜곡된 역사인식이야말로 아베정권을 존속케하는 원동력으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1989년 버블경제 붕괴 이후 199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오랫동안 일본 경제는 전래없는 지체와 지리하게 이어지는 불황 속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6.25 동란 특수를 계기로 고도 경제성장을 맛 본 일본 국민들에게 현재의 상황은 큰 허탈감과 상실감을 안겨줄 뿐이었다. 이러한 일본의 경제상황은 일본의 우경화의 근본이 된다. 장기 불황은 일본인 내면에 민족주의 정서를 심어주었다. 국내의 위기를 민족주의로 타파하려는 시도는 비단 일본만이 아니다. 미국의 Make America Great Again으로 대표되는 트럼프의 당선이나 브렉시트만 봐도 역사를 거꾸로 올라가 침략적 제국주의 국가였던 과거의 자신을 상기하는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더 '일본적인 것'과 '일본다움'에 자부와 긍지를 찾고자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회고적 민족주의는 아베정권의 핵심적인 사상이 되었다.
아울러 앞서 말한 민족적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경계짓기(임지현), 그리고 그 경계 밖에 있는 사람들을 타자화하고 배제하는 과정에서 일본 우익 세력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중국의 군사력 강화등의 주변 국가 위협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이다. 전쟁도 호황도 겪지 못한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폐쇄된 일본 사회 내부의 울분과 불만을 일본인의 우월감으로 자위하고 있는데, 이에 가장 필요한 요소는 경계 밖에 있는 타자화된 집단이다. 독도의 영유권 분쟁이나 역사인식 분쟁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배타적 민족사관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되고, 기성 세대에는 회고적 민족주의를 환기시킨다.
일례로 일본의 넷우익의 대표격인 '재특회(在特會: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는 2007년 재일한국인을 특권집단으로 몰고 배척하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당시 불고 있던 한류 열풍과 더불어 한국과 재일한국인은 가장 눈에 띄는 타자화된 특권 계층으로 적합했다. 여담이지만 소위 재일한국인의 '특권'으로 인해 일본인에게 '역차별'이 발생하며 일본 사회에 '무임승차'한 이들을 몰아내자는 그 주장이 한국의 세월호 유가족 프레임과 너무나 흡사한 것 또한 우연은 아니다.
아베정권이 들어선 이후, 혐한, 반한 시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둘의 관계가 필요 조건이 아닌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위를 주도하는 단체는 역사수정주의자 아베의 필수 세력이되었고, 각종 대중매체를 통해 이런 우경화작업을 구축해왔다. 이와 같이 우경화 현상이 계속 강화되고 정치권을 통하여 저변을 넓혀가는 것이 일본의 현실이 되었고, 이에 대한 실천적 행보로서 아베는 우익단체에 맞추어 호응하고 과거사 정당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통해 일본의 정신적 통일을 꾀하며 과거역사 수정주의에 입각한 평화헌법개정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정한론의 부활
그 역사적 사실과 정당성의 여부와 상관 없이 진구황후의 '삼한정벌설'과 요시다 쇼인등으로 대표되는 '정한론'은 이제 일본인의 자부심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한동환) 아베 정부의 묵인과 응원으로 혐한단체의 터무니 없는 주장은 어엿한 사회적 의견으로 둔갑하고 있고, UN의 제제권고에도 불구하고 '혐한류' 마켓팅이 성횡하고 있다. 아베의 역사수정주의는 개인이나 일부집단의 성향이 아니고, 상당히 깊은 뿌리와 조직, 만만치 않은 사회적 기반을 갖게 되었고, 또 일본 내셜널리즘의 새로운 통합원리로서 적지 않은 사회심리적 수요가 있기 때문에 더 확대될 여지가 있다. (이지원, 77)
더욱이 아베의 수정헌법을 기반으로 중국에 밀려나 아시아의 맹주역할을 빼앗기고 자책에 빠져 있던 일본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근본적인 역사인식전환을 하기 전에는 동북아시아에서 혹은 더 나아가 세계의 보편적 인권 향상의 흐름에서 일본이 리더로서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기회는 점점 더 사라질 것이 명백하다.
아울러 우리 미디어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 사회 내부에서도 이러한 역사수정주의에 저항하는 운동은 자주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 언론은 언제나 자극적인 단골 메뉴인 '민족주의적 일본'의 모습을 비추는데 급급하다. 물론 국가차원이 아닌 민간차원의 교류라고는 하지만 양심적인 시민단체들은 일본정부의 회피와 역사왜곡에 비판의 목소리를 가하고 수정헌법에 반대 시위를 열고 있지만 그런 보도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세습적 희생자의식으로서 일본국민 자체를 하나의 집합적 유죄로 상정하고, 언제까지나 한국을 식민주의의 피해자로 인식하며 손쉽게 한국민의 민족주의적 배타성의 발현에 면죄부를 얻는 근거가 된다.
일본의 혐한이라는 프레임은 아베 정권의 원동력이자 기반이다. 그러나 그들이 전근대적 구조주의의 함정에 빠져 과거를 물고 빤다고 해서 우리도 똑같이 반응해야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지만, 잘못된 리더를 만났다가도 다시 정상궤도에 오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물론 일본 국민들에게 자정능력이 있는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개인적인 애정을 담아 응원을 보낼 뿐이다.